자수성가형 부자



















국내 양변기 부품의 70~80%를 공급하는 와토스코리아의 송공석(54) 사장은 전라남도 고흥 빈농의 아들이다. 송씨는 21살 때인 1973년 양변기 부품을 만드는 1인 기업인 남영공업사(와토스코리아의 전신)를 5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작년 11월 와토스코리아의 상장으로 송씨가 보유한 회사 지분 171만주(49%)는 시장 가치로 약 150억원으로 평가받게 됐다. 30여년간 회사를 키웠더니 150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송씨는 재산의 원천은 회사 지분 외에도 매년 회사에서 받는 월급과 배당금이라고 했다. 하지만 송씨는 정확한 개인 자산의 규모를 밝히기는 꺼렸다. 다만 송씨가 작년 7월 대림요업 주식 20억여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가 9월 12억원어치만 남기고 팔았던 것으로 미뤄 상당한 규모의 주식 투자도 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송씨는 “돈을 벌기 위한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살림집인 목동의 아파트를 3000만원에 구입해 아직도 살고 있다. 쉰이 넘은 나이에 고려대 경영학과 05학번으로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장 근처인 김포에 아파트를 한 채 더 사서 현재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



송씨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누구보다 먼저 깨쳤다. 16살 때 무작정 상경해서 잡았던 첫 직장인 K사는 당시 양변기 부품 시장을 독점했는데 갑자기 부도가 나서 시장에 부품 품귀 현상이 일었다. 송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업을 했다. 송씨는 “양변기 부품은 화장실이 있는 한 영원히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88년 올림픽을 즈음해서는 수요가 급증해 양변기 품귀 현상이 일었다. 송씨는 국내 생산이 달린다는 걸 간파하고 양변기를 수입했다. 목동의 공터에 매일 컨테이너 5개를 풀었는데 다 팔려나갈 정도로 대박이 났다. 외환위기 때는 하루아침에 거래처가 5억원의 부도를 냈다. 송씨는 오히려 100% 현금 결제를 요구하고 재료 가격 상승을 반영해 가격을 올렸다. 일부가 거래선을 바꾸면서 위기감도 있었지만 “손해 보고는 팔지 않겠다”며 몇 달을 버텼더니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았던 송씨의 회사에 물건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 후론 성장 일변도였다. 1998년 매출 33억원에서 2005년 매출 148억원에 순이익 28억원을 기록했다. 빚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부채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송씨는 “개인 돈과 회사 돈은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고 회사 돈으론 접대비도 한푼 안 쓴다”라며 “접대성 골프는 개인 돈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떳떳하게 벌고 깨끗하게 써야 부자를 시기하고 멸시하는 풍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