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리더십으로 무장하라



















감성의 시대를 이끌고 감성의 로직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세상의 승자가 되려면 감성의 리더십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보라. 거기서 자기만의 감성바이러스를 찾아내라.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에 담아 퍼뜨려라. 당신 자신을 이야기가 잇는 상품으로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이 곧 감성의  리더이다.

고대의 중국 황제 한 분이 궁정 수석화가에게 궁궐에 그려진 벽화를 지워버리라고 하명했다. 이유인즉 그 "벽화 속의 물소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매혹적인 일화는 우리에게 인간의 감각과 느낌, 곧 감성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감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이(耳), 목(目), 구(口), 비(鼻), 미(味) 등으로 지목되는 다양한 감각능력을 복합적으로 응집시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융합의 달인'이다. 그리고 그 감성을 통해 소통하는 존재다.

종래의 아날로그시대는 '감성분할의 시대'였다. 반면 디지털시대는 '감성융합의 시대'다. 아날로그시대에는 하나의 미디어에 하나의 감성능력을 대응시킬 수밖에 없었다. 귀에 대응하는 라디오, 눈에 대응하는 신문 등으로 말이다. 결국 모노미디어(Monomedia)에 그쳤던 셈이다. 따라서 아날로그 방식의 모노미디어는 라디오 따로, 신문 따로, 텔레비젼 따로, 확Sung기 따로라는 식의 '감성능력의 따로국밥'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디지털 방식의 멀티미디어(Multimedia)는 인간의 몸 안에서 오감을 자유로이 뒤섞듯이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저장 · 전달 · 재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감성능력의 섞어찌개'를 만든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세상은 '0과 1의 조합'이라는 경직된 '수리조합'의 세계가 아니라, 매우 유연한 '감성융합'의 세계다. 감성융합인 디지털은 '테크닉의 로직(=테크놀러지)'이 아닌 '감성의 로직(=센소러지)'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나눔의 로직(=쉐어러지)'과 함께 확장하며 '감성의 그물망'을 펼친다. 거기서 느낌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감성의 사회가 열린다.

따라서 디지털 세상의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감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러니 감성을 자유케 하라. 감성의 로직을 존중하고, 감성의 그물망을 펼치라. 거기에 자기만의 독특한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 그러면 이긴다. 감성이 승리한다. 그래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와 전(前) 소니 회장 오가 노리오(大賀典雄)의 대담집도 <감성의 승리(感性の勝利)>였던 것 아니겠는가.

시장은 '동감(同感)의 영역'이다. 함께 느끼는 것이 시장인 것이다. 금리가 낮아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돈들의 흐름도, 주식장의 오르내림도 결국은 사람들이 동감의 그래프를 그리며 연출해내는 거대한 감성의 흐름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시장은 동감의 원리에 따라 거대한 감성의 흐름을 만든다. 여기서 '감성의 시장'이 열린다.

감성의 시장은 곧 욕망의 시장이다. 더 이상 필요의 시장이 아니다. 필요(Needs)에 따른 상품을 파는 시장은 더 이상 커지기 어렵다. 이미 포화상태다. 그러나 욕망(Desire)을 담은 상품을 파는 시장은 새롭게 확장된다. 끝없이 펼쳐진다. 욕망의 시장, 감성의 시장은 테두리가 없다. 인간의 욕망이 끝간데 없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자동차를 탄다. 그러나 발품 팔지 않겠다는 필요에 따라서만 자동차를 타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필요의 자동차' 아니라, '욕망의 자동차'를 탄다. 필요에 의해서만 탄다면 자동차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러나 욕망으로 타기에 자동차시장은 계속 팽창한다. 욕망이 드라이빙하지, 필요가 드라이빙하지는 않는다.

감성의 시장에서 팔리는 욕망의 상품은 모두 이야기를 담는다. 말 그대로 '이야기가 있는 상품'이다. 그 이야기에는 전염성이 있다. 감성바이러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품의 질로만 승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상품에 담기는 이야기로 승부한다. 물론 그 이야기에 감성바이러스가 스며 있어야 한다. 감성의 시장이 그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나이키도 오래 신으면 밑창이 닳고 꿰지기는 매 한 가지다. 그러나 나이키는 '승리, 신화, 불패' 등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래서 동일한 질(Quality)의 신발보다 다섯 배, 열 배가 비싼 데도 여전히 팔려 나간다. 몽블랑 만년필도, 루이뷔통 핸드백도 같은 원리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에 담긴 이야기를 산다.

감성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야기가 있는 상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접붙인다. 자신을 그 감성바이러스가 넘실대는 이야기에 내삽시킨다. 결국 감성의 시장에서는 감성바이러스가 넘쳐 나는 '이야기가 있는 상품'이 지배하게 된다.

이야기가 있는 상품이 곧 '콘텐츠(Contents)'다. 그러나 아무 이야기나 담는다고 해서 부가가치가 큰 콘텐츠가 될 순 없다. 반드시 전염성 강한 감성바이러스가 담겨야 한다. 감성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야기가 있는 상품만이 대박을 터뜨린다. 결국 이미 열린 감성의 시장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감성의 휘몰이'를 해내는 사람과 조직이 이긴다.

감성의 시대다. 우리는 더 이상 이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물론 감성이 비(非)이성 혹은 반(反)이성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이성 · 감성'의 이분법적 사고에 얽매이지 말자. 그것은 근대의 함정이다. 근대성의 간계(奸計)일 뿐이다. 결국 감성의 시대를 이끌고 감성의 로직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세상의 승자가 되려면, 또 감성의 시장에서 이기고 공감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폭 넓게 펼치려면 새로운 리더십 곧 '감성의 리더십'으로 무장해야 한다.

감성의 리더십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에 강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감성을 운반하고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다. 또 스토리텔링은 감성융합인 디지털의 시대에 콘텐츠라는 가장 큰 부가가치상품의 생산방식이다. 하버드대학의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말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리더는 다름 아닌 '스토리텔러'다.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감성바이러스가 담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가 곧 리더다. 감성융합인 디지털의 시대는 '감성의 리더십'을 고대한다. 조직은 스토리텔링이 강한 '감성의 CEO'를 원한다. 시장은 감성바이러스가 넘쳐나는 '이야기가 있는 상품'을 요구한다.

그러니 이제 당신도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면을 보라. 거기서 자기만의 감성바이러스를 찾아내라.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에 담아 퍼뜨려라. 당신 자신을 이야기가 있는 상품으로 만들라. 이젠 당신 자신이 부가가치 큰 콘텐츠가 돼라. 그렇게 하면 당신이 곧 감성의 리더다.

자, 주저함 없이 감성의 리더십으로 무장하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지시하라. "감성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라"고. 또 세상을 향해 선언하라. "감성이 이긴다"고.